“ 책임성 없는 민주주의는 죽은 것과 같다"
21대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되었다. 최근 위안부 교육 문제, 정의연의 회계투명성, 개인 비리 의혹 등등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윤미향 당선인도 이제 국회의원이 되었다.
지난 이용수 할머니의 위안부 관련 2차 기자회견 후 대부분의 국민들은 29일 윤미향 당선인의 기자회견에서 진심어린 반성이나 사죄, 사퇴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주인-대리인 이론이 있다. 이에 따르면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책임성이라는 말도 있다. 국민의 대리인으로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수행해서 국민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책임성은 언제나 부각이 되기에 자주 사용되는 용어이며, 헌법에도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하고 있다.
21대 국회의원도 이제는 도덕적 책임, 법적 책임, 책무적 책임, 계약상의 책임이 주어졌고, 그 책임에는 일반적 의무, 재량권 및 사후에 해명할 수도 있어야 한다.
롬젝(Romzek,1996)은 “정치적 책임(political accountability)”은 시민들의 기대에 대한 “대응성(responsibility)”을 의미하며, 대의민주제라고 하는 정치 기제 속에서 도덕적 책임을 구성하는 핵심 영역이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법적 책임은 법적 추궁의 대상이니 검찰의 사후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권력의 대결이 낳은 비정한 상여(喪輿)소리의 기원”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는 장례식 때 상여(喪輿)를 매는 관습이 있었다. 상여꾼들이 상여소리를 부르면, 슬픔을 함께 나누는 동네사람들이 있었다. 현재에도 나이든 어른들은 동네에서 상여 구경했던 추억들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만가(輓歌)·향도가·향두가(香頭歌) 등 다양한 형태로 불리었지만 지금은 영구차로 하니 보통 주변에서 불리지 않고 있다.
메기는 소리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북망산천이 머다더니 내 집앞이 북망일세”,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오실 날이나 일러 주오” 등과 같이 많이 쓰인다.
상여소리에 등장하는 북망산(北邙山)은 중국 하남성[河南省] 뤄양시 북쪽에 있는 작은 산 이름이다. 뤄양에는 한나라 이후의 역대 제왕과 귀인, 명사들의 무덤이 많았으며, 어느 때부터 북망산은 무덤이 많은 곳으로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으로 쓰이게 되었다.
그런데 상여소리, “만가(輓歌)의 기원”은 일반적으로 “薤露歌(해로가)” 또 하나는 “蒿里曲(호리곡)”에서 찾는다.
한(漢)나라 고조 유방(劉邦)이 진(秦)나라를 이어 천하를 얻기 전, 그에게는 초왕 항우 외에 또 다른 강력한 적 제왕(齊王) 전횡(田橫)이 있었다.
그가 창업의 삼걸(三傑) 중 한 사람인 한신(韓信)에게 급습 당한 일이 있었는데, 그 분풀이로 유방이 보낸 세객(說客) 역이기(酈食其)를 삶아 죽었다. 그러나 형세는 급변하여 유방이 한나라를 세우고 즉위하자 전횡은 500여 명의 부하와 함께 지금의 발해만에 있는 섬 전횡도(田橫島)로 도피하게 되었다.
유방은 전횡이 반란을 일으킬까 우려하여, 그를 용서하려고 회유하였는데 포로가 되어 유방을 섬기는 것이 부끄러웠기에 전횡은 낙양을 30여 리 앞두고 목을 질러 자결하였고, 섬에 남아 있던 500여 명의 전횡의 부하들도 따라 충성과 절개의 표시로 모두 순사하였다.
이를 애석하게 여긴 전횡의 문인(門人)이 있었고, 노래를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날 만가의 효시(嚆矢)가 되었다고 한다.
“아무도 슬픔을 모르는 ⓵아야마고지나 노래〔阿也麻〕”
우리나라 성호전집의 해동악부(海東樂府)에도 아야마고지나 노래〔阿也麻〕라는 것이 있다.
고려 충혜왕(忠惠王) 4년(1343)에 원나라가 대신 타치(朶赤) 등을 파견해 왔고, 왕은 백관을 거느리고 교외에서 맞이하였다. 정동성(征東省)에서 조서를 듣는 중에 갑자기 타치 등이 왕을 발로 차고 결박한 뒤 즉각 왕을 데리고 말 한 마리에 실어서 내달렸다. 왕이 잠시 머물 것을 청하자 타치 등은 검을 뽑아 위협하였다고 한다. 원나라는 왕을 함거(檻車)에 실어서 게양현(揭陽縣)으로 유배 보냈고, 황제가 왕에게 말하기를 “네가 임금이 되어 백성을 너무 심하게 수탈하였고 비록 네 피를 천하의 개에게 주더라도 오히려 죄를 갚기에 부족하지만 살육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게양현에 유배 보내면서, 원망하지 말고 떠나도록 하라.” 하였다고 한다.
게양은 연경(燕京)에서 2만여 리나 떨어진 곳인데 역참의 수레가 빨리 내달려 온갖 고초를 다 겪다가 게양에 도달하지 못하고 악양(岳陽)에서 죽었다고 한다. 혹자는 짐독(鴆毒)에 독살 당했다고 하고 혹자는 귤을 먹다가 죽었다고도 하였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은 고려 사람들은 슬퍼하는 이가 없었으며 백성들은 심지어 기뻐 날뛰며 다시 살아난 날을 만난 것처럼 여기는 자도 있었고, 백성들이 왕의 덕을 보지 못한 것이 이와 같았다고 하였다. 이보다 앞서 궁중과 항간에서는 “아야마고지나(阿也麻古之那), 이제 가면 언제 오나.”라는 노래가 퍼졌는데, 이때에 이르러 사람들이 이 노래를 풀이하기를 “악양에 죽을 환란이로다.〔岳陽亡故之難〕 이제 가면 언제 돌아올꼬.”라고 하였다고 한다.
《고려사》에도 충혜왕은 유희와 음행에 대한 기사가 곳곳에 실려 있으며, 당시 백성과 대신들도 충혜왕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었던 것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충혜왕의 구명 운동에도 대신들이 매우 소극적이어서 이제현이 정동성(征東省)에 글을 올린 것이 전부였다고 하며, 후세인들도 고려의 충혜왕을 조선의 연산군도 학을 뗄 정도의 가장 높은 수준의 초강력범죄인 왕으로 비난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상여(喪輿)소리의 기원과 아야마고지나 노래〔阿也麻〕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매우 강하다.
상여(喪輿)소리 기원에서는 전횡의 죽음에 부하 500명이 함께 애도하며 순사하였지만 아야마고지나 노래〔阿也麻〕에서는 충혜왕의 죽음에 애도도 없고 오히려 기뻐 날 뛴 이도 있었다고 한다.
이는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책임성이 이렇게 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책임의 기준 중 특히 도덕적 책임은 위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강조하면 할수록 중요한 용어로 21대 국회의원의 기본 책임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도덕적 책임은 거듭 강조하지만 국민의 요구인 대응성이 핵심이기에 개인적이고 도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공식적 역할이나 지위에 관계될 필요도 없다. 또한 타인이나 자신과 관여된 사람의 행위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며, 법적 요구에 대해서도 충족되면 책임을 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은 29일 이제는 윤미향 국회의원의 된 기자회견의 내용을 두 눈으로 보았으며, 두 귀로 모두 들었다.
상여(喪輿)소리 “전횡의 죽음이냐”, “아야마고지나 노래〔阿也麻〕” 에서의 “충혜왕의 죽음이냐” 우리는 그 선택을 기다려 보고 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분노가 하늘을 덮었지만 두려움에 떨지 않는 길은 오직 책임을 지는 길이다. 책임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죽은 것과 같다.
기자역주
아야마고지나 노래〔阿也麻〕: 이 내용은 《동사강목》과 《고려사절요》 등에 실려 있는데 본문의 기술은 《동사강목》과 거의 일치한다(출처번역. 한국고전번역원 김성애역. 2011). ‘아야마고지나’라는 노래가 퍼질 당시에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가 나중에야 아야는 충혜왕(忠惠王)이 죽은 장소인 악양(岳陽)을, 마고지나는 망고지난(亡故之難), 즉 죽음의 환난을 뜻한다고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