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에는 더불어민주당이 미래통합당의 거센 반발 속에서도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차지하였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단독 국회는 헌정 이후 시작된 관례와 관행을 무시하고 미래통합당의 표결 보이콧 속에서도 국회 본회의를 열었고, 총 투표수 187표 중 185표로 윤호중 의원을 신임 법사위원장으로 선출하였다. 윤호중 법사위원장 선출로 기존 법률가 출신이 법사위원장에 앉는 관례마저도 모두 깨어졌다.
이를 두고 한 편에서는 여당 독재라는 시각이 표출되고 있으며, 법조계 일각에서 조차도 사법부와 검찰도 통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기존 삼권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의 민주적 원리를 채택하고 있고, 그 중 의회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정부 및 여당 쪽으로 쏠림이 시작되어 견제와 균형의 무게 추에 이상 신호가 발생한 것이다.
이는 정부 및 행정부에 행정책임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인 행정통제의 기능이 약화되어 제 기능을 할지 의문이 시작되었다는 신호인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북한이라는 변수로 인해 생긴 남북분단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발생한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통제가 없어졌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프리드리히(Carl J. Friedrich)는 정부의 행정책임을 확보하기 위한 효율적 방안으로 공무원 스스로의 도덕적·자율적인 통제 방식인 내재적 통제(internal control)을 주장하였다. 이에 반해 파이너(Herman Finer)는 도덕심에 바탕을 둔 내재적 통제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대리인의 주인인 시민이 직접 통제를 가하는 외재적 통제(external control)를 강조했다. 이 중 외부통제, 즉 외부적·공식적 통제에 의회의 입법권에 의한 통제가 있다.
이번에 선출된 법사위원장은 법률의 제정과 개정을 통한 행정조직과 절차를 포함하여, 공공정책의 목표와 대상을 결정함으로써 정부 및 행정부의 행정 범위를 구속할 수도 있으며, 정부가 제출한 법안이나 예산의 수정, 결산 승인을 포함한 내용에 대해 의회 입법권을 활용할 수도 있다.
이는 사실상 야당의 입법권에 의한 정부 및 행정부, 사법부에 이르는 광범위한 범위의 견제와 균형의 통제 기능이 거의 사라지고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연유에서 정부와 여당의 폭주에 브레이크를 밟아달라는 야당의 호소는 일리가 있지만 국민들의 돌아선 마음을 잡기에는 아직까지 아쉬움이 남아있다.
작금의 여당 폭주를 보면서 지난날 18세기 소퇴계라는 별칭이 있는 조선시대 학문의 최고봉에 오른 대학자였던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1711∼1781)의 고조부 일화가 생각난다(「청빈과 지조로 지켜 온 300년 세월, 안동 대산 이상정 종가」. 김순석. 2013)
대산 이상정의 고조부는 임진왜란 명재상이었던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의 외손주이자, 병자호란시 안동의 의병장이었던 수은(睡隱) 이홍조(李弘祚, 1595~1660, 이하 수은)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이치에는 우연한 일은 없다.”
승려의 병을 고쳐준 수은 선생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한양 낙선방(현재 서울 인사동)에서 수은이 낙향하기 전, 외조부 류성룡을 만나 상의하면서 지내던 어느 추운 겨울날, 길을 가다가 쓰러져 있는 승려 한 사람을 발견하고 집으로 옮겨 극진히 간호하여 병을 고쳐 주었다.
병구완을 받은 승려는 “빈도의 목숨을 구해 주신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승려의 말을 들은 수은은 “원 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만하기 천만다행입니다.” 라고 답하였다. 승려는 수은에게 “소승은 가진 것이 없고 재주도 없지만 풍수를 조금 볼 줄 아니 댁의 묘 터를 한번 보아 드리겠습니다.”하고 청하였다. 수은은 “아직 몸도 불편하신데 그러실 것은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극구 사양하였다. 그러나 승려는 “터라는 것은 원래 임자가 따로 있는 법입니다. 제가 보아 드린다고 해서 꼭 이 집터가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만 집안의 기운을 보니 머지않아 큰 인물이 나올 듯합니다.” 라고 하면서 앞서서 걷기 시작하였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수은은 더 사양을 못하고 따라 나섰다. 수은은 승려가 보아 준 묘터를 자식들에게 알려 주었는데 그곳이 지금의 안동 남간이다. 뒷날 수은이 사망하자 맏아들 효제와 그 후손들이 승려가 보아 준 그 자리에 수은의 묘를 정하였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곳에는 훗날 퇴색하였던 퇴계학파를 다시 꽃 피우고 영남의 정신적 지주로 ‘호학’이라는 학문으로 불리는 퇴계학파의 적통을 이은 대학자 대산(大山) 이상정이 탄생하게 되었다.
흔히 세상에는 위의 일화처럼 우연한 사건이 일어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우연한 일인 것처럼 보이는 것에도 우연한 일은 사실은 없다. 다만 그럴 수밖에 없는 우연에도 필연적인 원인변수가 있고, 그 원인이 그 당시에는 외부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변수가 있었기에 우리는 우연이라고 간주할 수도 있다.
“선을 베풀어야 복을 받는다.”
“베푼 만큼 되돌려 받는다.” 아주 간단한 명언이지만 정말로 어려울 때 그 위기를 도와준 사람이 있었고, 도움을 준 사람이 자신도 물론 어려운 상황일 수도 있지만 위험을 감수하면서 선을 베풀었다면 그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그 되갚음은 말로 어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제 국회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다수의석의 시대이다. 권력의 속성에 따라 국회의장을 비롯하여 법사위원장도 가졌다. 예고한 것처럼 나머지 상임위원장도 독차지 하겠다며 야당을 밀어 붙이고 있다.
대통령제하에서 다수 여당의 상임위원장 독식은 의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미국과 같은 정치 선진국에서 있는 일이다. 작금의 여당은 패스트트랙까지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면서 반드시 합의처리해야 할 선거법까지 과반 표결로 통과시켰던 과거 전력을 보아서 여당의 상임위원장 독식은 공포 그 자체다. 더나아가 당의 고유권한인 상임위원까지 일방적으로 강제배정했다는 것은 야당 무력화를 넘어 허수아비 야당으로 만들겠다는 입법독재의 단초를 암시하고 있다.
어느 것이 ‘현명한 선택’인지, ‘세상의 움직이는 이치’가 무엇인지 모두 알 수는 없지만 “마시는 컵에 물이 넘치면 반드시 흘러내린다.” 는 것은 눈으로 보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선을 베풀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