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드라미
꽃소리(정원디자이너)*
나는 빨강색을 무척 좋아하는데 많은 톤의 빨강 중 검붉은 빨강, 즉 체리나 맨드라미 빨강을 특히 좋아한다. 그 검붉은 빨강이 주는 느낌을 뭐라 간단히 표현하긴 힘든데 그 빨강을 대할 때 마다 설레고 행복하니, ‘설레는 행복감’ 정도로 해두자. 내 꽃밭에 참으로 많은 빨강 꽃들이 피지만 이 설레는 행복감을 주는 그 빨강 색은 맨드라미가 유일하다. 물론 체리도 심었었지만 외래종인 요 체리는 뭐가 그리 안 맞는지 3년이 지나도록 꽃도 피우지 않고 맘고생을 시키고 있다. 하지만 내게는 지천인 맨드라미가 있다.
'꼿꼿한 돋보임' 맨드라미 사랑
내 꽃밭의 여름 꽃들이 제대로 한 살이를 끝낼 때까지 참으로 손이 많이 가는데, 물 영양분 잡초와 질병 퇴치… 그런데 이런 당연한 보살핌 못지않게 신경 쓰이는 일 하나는 지지대 세우기다.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한 살이를 끝내려면 지지대는 필수. 아주 키 작은 꽃을 제외하고 웬만큼 키가 올라오는 꽃 중 우리나라의 무시무시한 장마와 태풍을 지지대 없이 맞설 수 있는 꽃은 내 꽃밭에선 맨드라미뿐인 것 같다. 여름 땡볕 아래 여기저기 지지대를 세우다 문득 고개 돌려 보면, ‘난 괜찮아요.’라는 듯 납작한 붉은 줄기로 단단히 버티고 서있는 기특한 맨드라미. 맨드라미가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은 깊고 튼튼한 뿌리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난 꽃 진 맨드라미를 뿌리가 얼고 녹기를 반복한 겨울을 넘기고 이른 봄에 편안히 뽑는다.
맨드라미주를 아시나요
꽃밭 군데군데 검붉게 무리지어 있는 맨드라미를 보고 여동생이, “적군이 쳐들어 온 것 같아.” 라며 농을 할 때면, “야, 적군이 아니라 아군이거든.” 그렇다 맨드라미 무리에서는 든든한 장군의 힘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 힘은 직접 길러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힘이리라. 여름부터 가을까지 내게 설레는 행복감을 주는 이 맨드라미는 한 살이를 마친 후에도 이듬해 또다시 꽃 피울 때까지 긴긴 행복감을 주는데, 그건 맨드라미 술이다. 나는 매년 일명 ‘오(五)과실주’를 담는데 그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적당한 항아리에 소주를 부어놓고 열매를 거둘 때 마다 차곡차곡 넣어둔다. 매실로 시작해 보리수 산딸기 가을엔 오가피 모과 그리고 마지막으로 씨앗을 긁어낸 끝물 맨드라미 꽃잎을 넣고 밀봉해 놓으면 깊은 겨울쯤엔 잘 익어 있다.
꽃들이 휴식하는 겨울 어느 날 문득 생각난 듯 뚜껑을 열어보면 항아리 가득 맨드라미 그 진한 꽃물이 가득하다. 어쩌다 귀하게 흰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손님이라도 온 듯 아끼는 잔에 붉게 담아 본다. 은은한 모과 향에 연한 매실 맛. 꽃이 없는 텅 빈 겨울도 꽃을 보는 듯 행복해진다(산청 별총총 마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