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꽃도 아름답다
지는 꽃도 아름답다
  • 꽃소리 기자
  • 승인 2020.11.09 19: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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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는 꽃

 

                                                                               꽃소리(정원디자이너)*

 

사람들은 지는 꽃을 보며 어떤 느낌을 갖을까? 속절없이 가버림에 대한 안타까움? 변색되어 말라가는 모습에 대한 미움? 아님 잠깐이나마 선물해 주었던 행복감에 대한 고마움? 사람마다 그 느낌이 다르겠지만, 난 지는 꽃도 아름답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름다움이 어디 그 화려한 외형에만 있으랴, 비바람 병충해 꿋꿋이 견뎌내고 한 살이를 마감하는 초연한 그 모습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을!

꽃이 지는 모습은 꽃 종류만큼이나 다양하다. 봄꽃은 흩날리며 지는 꽃이 많고, 여름꽃은 툭, 호로록 떨어지는 꽃이 많고, 가을꽃은 줄기에 매달린 채 그대로 말라가는 꽃이 많다. 봄꽃 중 매화와 벚꽃이 하얗게 봄바람에 흩날리는 풍경은 만발했을 때만큼이나 매력적이다. 한 줄기 봄바람이 눈꽃을 흩날릴 때면, 난 방에 있다가도 서둘러 꽃밭으로 나간다. 나무 밑에 눈처럼 뽀얗게 깔려있는 꽃잎을 보러. 이상하게도 매화나 벚꽃은 떨어져 날려도 안타깝지 않고 느긋이 즐기게 된다. 어지간히 떨어져도 만발한 나뭇가지엔 아직도 지천인 꽃송이들로 인한 여유 때문일까? 그런 관점으로 보면 동백과 목련 그리고 모란이 떨어지는 풍경은 안타까움 그 자체일 것이다.

 

지는 벚꽃에는, 가볍게 작별인사할 수 있는 여유가. . .

 

 

가지에 꽃눈으로 매달려 혹독한 겨울을 견뎌낸 동백과 목련, 그 큼직한 꽃송이가 툭툭 떨어질 땐 자잘한 매화나 벚꽃 잎이 날릴 때처럼 그렇게 마냥 즐겨지지 않는다. 그러다 모란에 이르면 그 안타까움은 절정에 이른다. 모란이 지는 풍경을 본 적이 있는가? 모란은 시들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냥 생생한 꽃잎으로 떨어진다. 아직은 좀 더 피어있어 주어도 좋으련만, 어디 한군데 시들지도 바래지도 않은 그 큰 꽃잎이 조각조각 흩어진다. 아쉬움에 도톰한 꽃잎 한 조각 주워보면 아직도 붉고 촉촉한 것을!

 

   떨어진 목련꽃, 그 꽃잎 하나 하나에 슬픔이. . .

   

 

가을꽃은 꿈꾸는 꽃

이렇게 봄꽃과 초여름 꽃이 지는 모습은 짧은 순간이지만, 한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꽃들은 그렇지 않다.

장마와 태풍 그 엄청난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찬란하게 빛났던 꽃들이 시월로 접어들면 조금씩 달라진다. 그러나 얼핏 봐선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서서히 마감을 준비하는데, 선명했던 색채와 쾌활했던 생기는 느껴질듯 말듯 옅어져 간다.

해맑은 가을햇살 아래 마지막 자태를 뽐내는 가을꽃들,  뒤로 이미 진 친구들이 보인다

 

 

그러다 시월 하순 어느 새벽 몰아친 된서리에 꽃들은 갈변해 정지해버린다. 난 갈색으로 정지한 이 가을꽃들을 이른 봄까지 그냥 그대로 둔다. 겨울 내내 마른 꽃대 위에 새들이 날아와 앉기도 하고, 함박눈이라도 날리면 마른 꽃들은 꿈을 꾸는 듯 평온해 보인다. 그러면 난 꿈꾸는 그 꽃들을 보며 그들과 함께 보냈던 봄, 여름, 가을의 그 행복을 반추해보기도 하고.

 

함박눈으로 뒤덮힌 겨울 꽃밭
함박눈으로 뒤덮힌 겨울 꽃밭, 정적뒤로 긴 기다림이...

 

꽃밭이 정지한 겨울 초입 어느 날, 꽃들처럼 나도 일상을 정지하고 한가로이 지는 꽃 단상(斷想)에 빠져본다. ‘꽃은 다 예쁘다. 지는 꽃도 아름답다’(산청 별총총 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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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환경신문 2020-11-09 19:53:39
*꽃소리씨는 교사이자 귀농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