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새
꽃소리(정원디자이너)*
정자풍경
시골을 다녀보면 마당 한쪽에 정자를 둔 집을 보곤 하는데, 시골 본토박이 보다는 귀촌한 사람의 집일 확률이 높다. 귀촌할 꿈을 꾸는 도시인들이 그리는 풍경 속엔 소박한 정자, 작은 그네, 야외 티 테이블 등 도시에서는 누리기 힘든 것 들이 들어 있을 터. 그런데 그런 것 들이 도시에서 상상할 땐 다소 사치스러워 보였지만, 막상 시골에서 살아보면 참 요긴한 것 들이다. 왜나면 시골로 들어 온 후론 친구나 친척들과의 만남이 주로 그 시골집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자연을 찾아 온 손님을 방 안에서만 대접할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 집에도 정자를 마련했다. 일하기 힘든 한 낮엔 정자에 누워 산자락에 걸린 구름도 보고, 비오는 날엔 꽃밭에 떨어지는 빗줄기에 씻겨 오는 향긋한 꽃향기도 맡고. 그런데 정자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아무래도 먹고 마시는 일인 것 같다. 특히 손님의 방문이 있는 날은 고기도 구워 먹고 차도 마시고. 손님들은 정자에서 먹는 건 뭐든 맛있단다.
정자를 집 옆쪽에 설치한 그 때가 아마 3월 말 경. 굵은 원목 4기둥은 약간 휘어진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지붕을 떠받고, 안 쪽 천정부분은 한옥처럼 둥근 원목들이 꽤 그럴듯하게 얽혀있었다. 반짝 반짝 윤이 나게 바닥을 닦고 앉아보니 흠, 제법 신선놀음 분위기. 그런데 그 정자 천정에 박새 부부 한 쌍이 둥지를 틀려는 게 아닌가. 집을 지으려고 이끼, 마른 나뭇잎 같은 걸 자꾸 물어 올리는데, 그때마다 바람은 또 그 자재들을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정자 지키기
박새는 우리 꽃밭에 가장 많이 날아오는 작고 귀여운 새다. 난 이미 그 박새들을 위해 꽃밭 가장자리 과일나무 5군데에 인공새집을 달아 놓았다. 설계도까지 그려가며 어렵게 만들었는데, 왜 거긴 안 들어가고 하필 정자 천정인가? 허락할 수 없었다. ‘정자는 손님이 오면 음식을 먹는 곳이라고 얘들아.’ 집을 지을 만한 틈을 모두 테이프로 막고 있으려니 박새가 정자 주위를 두어 바퀴 돌곤 뽕나무 가지에 앉아 한동안 정자 쪽을 보는 듯 했다. ‘포기해라.’
박새와의 이별
얼마 후 박새는 정자를 포기하고 더디어 매화나무에 달린 인공새집에 둥지를 틀었다. 너무 신기하고 궁금해 먹이활동을 나간 사이 슬쩍 슬쩍 들여다보았다. TV 다큐멘터리 시간에나 보았던 광경을 생으로 보는 재미란! 조그만 알에서 새끼가 나오고 처음엔 미동도 않던 녀석들이 인기척만 나면 머리보다 더 크게 입을 벌리는 모습은 또 얼마나 귀엽던지. 그때 쯤 되니 어미 새도 여간 바쁜 게 아니었다. 벌레를 물어다 나르느라 하루 종일 새집을 들락거렸다.
그러던 중 봄비 치곤 꽤 많은 비가 며칠 계속 내렸는데, 그 비가 그친 후 제일 먼저 새집으로 달려갔건만, 4마리였던 애기 새들은 이미 둥지를 떠나고 없었다. 아, 둥지를 떠나는 순간도 지켜보고 싶었는데. 아쉬움에 돌아서려는 순간, 새집 구멍 쪽에 뭔가 있는 것 같아 멈췄다. 그건 굳어버린 애기 새 한 마리였다. ‘에그, 비 때문에 먹이를 충분히 구하지 못했구나!’ 그대로 둘 순 없었다. 애처로운 그 작은 새 집어내는데 핀셋 쥔 손이 떨렸다. 비만 오지 않았더라면 날아 갈 수 있었을 텐데... 새집달린 매화나무 밑에 흙을 파고 묻고 있자니, 몇 그루 건너 대추나무 가지에서 박새 한 마리가 자꾸 울어댔다. ‘엄마 새 일까?’(산청 별총총 마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