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꽃소리(정원디자이너)*
우리 시골집 꽃밭 주위엔 전에 살았던 사람이 심어 놓은 꽃나무들이 꽤 많다. 그런데 이 나무들이 참으로 뒤죽박죽, 그냥 여기저기 쿡쿡 박혀있는 모양새다. 봄바람에 실려 오는 그윽한 꽃향기를 따라 가 보면 꽃밭 비탈진 언덕 아래 뽀얀 연분홍 한국 산분꽃이 만발해 있고, 하얀 꽃 초롱을 가지 가득 매단 때죽나무는 집 옆구리 개천가 구석에 박혀 있다.
새빨간 열매 뒤덮는 보리수나무는 키 큰 대추나무에 가려 아예 보이지도 않고, 황매화와 해당화는 왜 대문 밖에다 심었을까? 황매화와 해당화 꽃이 필 때면 대문 밖을 왔다 갔다…
이 수많은 뒤죽박죽 나무들 중 비교적 만만해 보이는 자목련 한 그루를 옮겨 보기로 했다. 가지도 가늘고 키도 별로 크지 않은 아직 어린 나무였다. 이른 봄 어느 일요일 실행에 들어갔다. 처음엔 나와 두 여동생이 호미와 작은 곡괭이로 시작했는데 뿌리를 그렇게 깊이 내리고 있을 줄이야! 파도 파도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음에 내가 제일 먼저 지쳐 호미를 놓았고, 끝을 보겠다던 동생들도 점점 지쳐, 끝내는 집 안에서 딩굴거리던 남자들을 불러내어야 했다. 꽃밭 중앙 동백나무 옆으로 자목련을 옮겨 심은 뒤 나른한 휴식의 커피 한 잔 마시며 우린 맹세했다. 이후론 절대 섣불리 옮겨 심지 말고 그냥 묘목 사다 심자고. 그러나 그 맹세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자목련과 사투를 벌이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감나무 밭에서 뒤 산을 올려다보니 저위 소나무 사이사이로 분홍빛이 살짝 살짝 보이는 듯 했다. 혹시 진달래? 곧장 올라갔다. 산이 높지는 않아도 경사가 가파르고 가시 덩굴이 많아서 등산하기 상당히 까다로운 산. 거의 산 정상쯤에 진달래 밭이 형성되어 있었다. ‘아, 이 진달래 라인이 좀 아래쪽으로 내려와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너희들을 보러 매 봄마다 이 힘든 등산을 할 수 없으니 오늘 한 그루만 데려가겠노라.’ 그 중 제일 어린 한 그루를 데려와 창을 통해 잘 보이는 꽃밭 테두리 중앙에 심었다. 철쭉이 아닌 진달래를 방에서 꽃밭에서 매일 볼 수 있다니!
마음속의 진달래제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그 진달래의 풍경은 왠지 어색했다. 우리 꽃밭의 테두리는 그냥 자연 그대로다. 인공적으로 석축을 쌓거나 담장을 두르지 않았다. 진달래 뒤쪽은 낮은 언덕과 산이다. 그래서 난 진달래가 꽃밭에 잘 어울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左 불두화 右 나무수국 사이에서 진달래는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같았다. 그래, 진달래는 아직은 갈색인 산 속 여기저기 무심한 듯, 그러나 뜻밖의 분홍으로 피어 있음이 좋았다. 옮겨진 진달래를 보고 있자니 자꾸 노천명의 시 국화제(菊花祭)가 떠올랐다. “너는 끝내 거친 들녘 정든 흙냄새 속에 맘대로 퍼지고 멋대로 자랐어야 할 것을……” 그러나 노천명이 국화제를 지냈듯이 진달래제를 지내려 다시 산으로 올라가긴 너무 힘들어, 그냥 두고두고 “ 뉘우침에 떨리는 미련한 손”으로 보살필 수밖에(산청 별총총마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