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린 기억 찔레 꽃차
쓰린 기억 찔레 꽃차
  • 꽃소리 기자
  • 승인 2021.05.08 00:5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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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레

 

                                                                                                       꽃소리(정원디자이너)*

 

 

"찔레" 나지막이 불러보면

그 때가 아마 찔레꽃 끝 무렵이었을 거다. 햇살이 투명하게 반짝거리는 아침나절 한 바탕 꽃밭 일을 끝내고 등나무 그늘에 앉아 커피 한 잔 아껴가며 음미하고 있었다. 이따금 살랑거리는 바람에 은은히 실려 오는 찔레 향. 흐드러졌던 한창 때는 지났지만 얼마간은 그렇게 꽃밭을 하얗게 날아다닐 찔레 향. 이사 온 첫 해 제일 먼저 집 뒤 구석진 개울가에서 대문간으로 자리 격상시켰던 찔레였다. 그런데 “찔레” 나지막이 불러보면, 비슷한 정취의 넝쿨장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애잔함이 콕 찌른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구슬픈 노랫말 때문인지, 유년시절 새순 꺾어 먹고 놀았던 아련함 때문인지.

 

형기가 밴 청순함 그 자체, 찔레꽃
청순한 향, 찔레
 

 

 

찔레 좀!

아무튼 마지막 커피 한 모금 절실히 머금고 찔레 그 애잔함에 흠뻑 젖었던 그 순간, “안녕하세요.” 불쑥 들이닥친 느닷없는 방문자. 가까운 이웃마을에 사는 50대 초반의 여인, ‘**농장’ 명함까지 내밀며, 우리 집에 꼭 한 번 들어와 보고 싶었단다. 그런데 간단한 인사가 끝나도 그녀는 별 중요하지도 않은 이런 저런 수다를 이어가며 대문간에서 꼼짝을 않더니, “저~ 이 찔레 좀 따도 될까요?” “네에? 뭐하게요?” “찔레 꽃차 만들려고요.” 물론 처음부터 의도하지 않았으니 빈 손. 내가 종이컵 한 개를 가지고 나오니, “그냥 비닐봉지 한 장 주세요.” ‘뭐지? 얼마 남지 않은 꽃을 초토화시키려나?’

 

우리 대문간 찔레
우리 대문간 찔레

 

 

쓰린 기억 찔레 꽃차

그런데 가만히 보니 활짝 핀 꽃도 아직 안 핀 꽃봉오리도 아닌, 꽃잎이 반 쯤 열린 꽃들만 땄다. 그 상태의 꽃이 가장 향이 진한 꽃차를 만들 수 있대나 뭐래나. 이리저리 배려 없이 한동안 찔레가지를 마구 헤집어 비닐봉지가 불룩해지자, 잠시 안 쪽 꽃밭을 휙 훑고는 슬슬 꽃밭으로 향했다. ‘어떡하지, 또 어떤 꽃이 제물이 되려나?’ 그때까지 난 정말 몰랐다. 꽃차를 만들 수 있는 꽃이 어떤 꽃인지. 그래서 더 불안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 때 핀 꽃 중엔 꽃차의 재료가 없어 내 꽃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녀가 무심코 찔레를 똑똑 따며 쓰린 가슴으로 바라보던 내게 한 얘기 중 충격적인 건 작약 꽃차였다. 자기 집 화단의 작약꽃은 꽃봉오리일 때 모두 따서 꽃차로 만드는데 그 작약꽃차는 엄청 비싸단다. 아니 흐드러지게 피는 찔레와 그루 당 드문드문 피는 작약은 사뭇 다르지 않은가? 그 차 맛이 얼마나 좋으면, 또 차 값을 얼마나 비싸게 받으면, 막 피려는 작약 꽃봉오리를 뚝 딸 수 있단 말인가?

 

꽃향기의 주인은 벌, 나비

오직 나만의 극단적인 생각이겠지만 허브 꽃차나 향수를 위해 재배되는 대규모 꽃 농장의 꽃들을 볼 때면, 고기를 위한 동물 사육장이 떠올라 맘이 불편하다. 내 꽃밭에 온갖 꽃이 지천이어도 비바람에 꺾이지 않는 한, 그 꽃 척척 꺾어 꽃병에 꽂아지지 않는다. 꽃들이 한 살이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조금만 보살펴 주면, 그들은 어여쁜 자태와 향기로움으로 보답한다. 그러나 이 또한 인간 중심의 생각일 뿐. 그 꽃과 향기는 결코 인간이 아닌, 벌 나비를 초대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그 주인공인 벌 나비는 그렇게 마구 꽃을 따지 않는데…(산청 별총총 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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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환경신문 2021-05-08 00:58:46
꽃소리씨는 은퇴한 교육자이자 귀농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