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꽃소리(정원디자이너)*
사실 몇몇 꽃을 제외하곤 거의 모든 꽃은 해바라기한다. 그런데 왜 유독 해바라기 꽃만 이름이 해바라기일까? 그건 해바라기를 직접 키우면서 관찰해보면 수긍이 간다. 대부분의 꽃들은 심어진 곳에서 해가 가장 오래 비치는 방향을 향해 꽃을 피운다. 그런데 해바라기는 정말 매일 그리고 시시각각 해를 따라 돈다. 아침은 해 뜨는 동쪽, 한낮엔 수직 상공을 향해, 오후엔 서쪽으로. 그러나 해바라기를 한 두 포기 심어서는 그 변화를 잘 못 느낄 수도 있다. 일렬횡대로 무리지어 심어놓았을 때 그 재미있는 광경을 확실히 볼 수 있다.
'해받들어총' 해바라기, 일편단심 그 자체
해바라기가 꽃만 해를 향하는 건 아니다. 잎사귀도 해를 향해 도는데 난 이 잎사귀들의 움직임이 더 재미있다. 십여 포기 해바라기가 일렬횡대로 정렬해 서서 그 큼직한 잎사귀들을 같은 방향 비슷한 각도로 펼치고 있는 모습은 마치 군인들이 행진하다가 사령관을 향해 ‘받들어 총’을 하는 것 같다. 볼 때마다 우스워서 혼자 ㅋㅋ 웃곤 했는데, 에그 그게 그렇게 웃을 일만은 아니었다. 해바라기가 꽃을 피우고 그 꽃들이 해를 향해 돌던 어느 날, 정말 난처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꽃들이 더 이상 돌지 않고 앞산을 향해 정지해 있는 게 아닌가. 꽃밭에서는 꽃들의 뒤통수만 봐야하는 황당한 풍경. 국 대접만한 꽃송이들이 모두 꽃밭을 외면하고 돌아서 있는 모습이라니!
해바라기목 기브스, 보호보다 꽃 향유하려는 과도한 인간의 욕심
나중에 안 사실인 즉 꽃송이가 커지면 무거워서 돌 수 없다는 것. 억지로 돌려 지지대에 묶어 보려 해도 꽃대가 워낙 단단해 잘 돌아가지 않을 뿐 아니라 잘못하면 부러질 위험이 있어 그냥 그렇게 해바라기와 외면할 수밖에. 그 여름이 다 가기 전 우연히 어떤 음식점 뜰에 심어진 한 무리 해바라기를 보게 되었는데, 십여 포기는 족히 되는 씩씩한 기상의 해바라기들이 모두 꽃 목에 꽤 굵은 각목을 대고 있었는데 마치 목 디스크 환자가 깁스를 한 모양새. 꽃송이가 작을 때 주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고정해 놓은 것이었다. 사실 나도 다음해엔 꽃이 커지기 전에 꽃대를 고정시켜볼까 생각 중이었지만, 차라리 꽃과 외면하는 상황이 또 온다 해도 저건 아니다 싶었다. 꽃대를 고정한다고 해서 꽃들이 고통스러운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왠지 너무 인간 중심적이란 느낌에 꽃들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꽃에 대한 과도한 인간개입 지양해야
‘꽃은 꽃의 입장에서’ 뭐 별 거창할 것 없는 내 평소 생각이지만, 꽃을 키워보면 결코 쉽지만도 않다. 생육조건이 다 다른 꽃들, 그들은 그들이 처한 입장을 동물처럼 적극적으로 알릴 수 없다. 상황을 무조건 받아들여 조용히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틴다. 방심했다가 꽃들을 잃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끊임없는 관심과 세심한 주의로 꽃들의 입장을 살펴야 한다. 꽃을 키우기 시작했던 초기엔 그 입장 살피기에 소홀해 이런 저런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는데, 그 중 많은 원인이 꽃들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었던 것 같다. 이젠 내가 키우는 모든 식물에 꼭 필요한 최소한의 개입만 하려 노력한다. 그래서인지 내 꽃밭에 있는 꽃과 나무들은 긍정적으론 자유분방 부정적으론 천방지축 분위기다.
못 돌면 그만!
내 해바라기들도 어느 여름은 동쪽 어느 여름은 서쪽으로 정지. 난 편안히 마음을 비웠고(예안 꽃마실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