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이정표가 된 배롱나무 꽃잎
인생 이정표가 된 배롱나무 꽃잎
  • 꽃소리 기자
  • 승인 2022.05.20 22:3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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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은 내게

 

                                                                                                                          꽃소리(꽃밭디자이너)*

                                                                  

 

한 순간의 느낌이 평생지기인양 곁을 맴돌며 가치관을 바꾸고 급기야는 삶의 형태까지 결정짓는, 그런 강렬한 느낌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또 그것이 삶에 역기능이 아닌 순기능으로 작용했다면 그건 행운이리라. 내게 그 행운의 순간을 준건 나풀거리는 작은 꽃잎 한 조각이었다.

 

           본 영상은 이 기사에 나오는 부산여중 배롱나무는 아니지만 배룡나무의 아름다움을 공유하고자 선택했음

 

 

 

인생 이정표가 된 배롱나무 꽃잎

아득히 먼 옛날 여중학교 1학년 시절, 우리 학교는 화단이 무척이나 아름다웠었다. 숲이 울창한 산 밑 오목조목 낮은 언덕들을 살린 꽃동산과 꽃길은 참으로 낭만적이었다.

 

부산여자중학교

배롱나무 등 갖가지 꽃 나무와 꽃이 유달리 많았던 부산여자중학교 전경

당시 빨간 지붕이 참 예뻤는데 지붕개량으로 옛 멋이 사라져 아쉽다

 

14살 평생 그렇게 다양하고 많은 꽃은 또 처음이었다. 그 꽃동산과 꽃길에서 윤동주와 김영랑 그리고 박목월을 읊으며 감성을 키워가던 여름 어느 지루한 수업시간. 집중을 못해 뒤척이고 있을 때 책상위에 펼쳐진 하얀 공책 위로 빨간 꽃잎 한 조각이 팔랑팔랑 날아와 사뿐히 앉았다. 살짝 살짝 스치는 미풍에 그 작은 꽃잎은 공책에서 필통으로 다시 내 손등 위로 나비처럼 날아다녔다. 열린 창밖을 보니 새 빨간 꽃송이 흐드러진 꽃나무 한 그루가 ‘응, 나야.’ 바람에 일렁였다. 그 순간 난 들은 듯했다. 그 꽃의 소리를. 수업이 끝나고 화단에 내려가 이름표를 보니 <배롱나무>였다. 이 나무가 언제부터 여기 있었지? 가만히 둘러보니 나무와 꽃들은 모두 이름표가 있었다.

사실 그 전엔 학교 화단의 그 예쁜 꽃과 나무들은 내게 생명체적인 존재라기 보단 아름다움이라는 관념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배롱나무가 꽃잎 한 조각을 날려 보내 나와 얘기한 그 순간 이후 꽃들은 살아있는 생명체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 틈나는 대로 꽃과 나무들의 이름을 익혀갔다. 꽃의 이름을 알아간다는 건 꽃에 대한 관심이었고 관심은 사랑으로 사랑은 열정으로 그리고 그 열정은 언젠가는 꼭 나만의 꽃밭을 가꾸어 보리라는 지독한 소망으로 발전해갔다. 빠듯한 도시의 삶에 햇살 가득 넓은 꽃밭은 늘 간절한 목마름 같은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아득히 먼 불가능 같은 것만은 아니었다. 삶이 힘든 언덕에 가로막힐 때 마다, 꽃밭은 그 언덕만 넘으면 일구어볼 수 있는 희망이었다.

꽃 키우기의 시작은 결코 어렵지도, 또 그렇게 많은 땅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난 그랬다. 베란다 화분, 옥상 채소상자 귀퉁이, 주말농장 테두리… 그 어디든 관심과 사랑이면 꽃은 핀다. 그리고 그 꽃들은 키우는 내게도 그 꽃을 보는 누군가에게도 한 숨 쉬어갈 수 있는 예쁜 여유가 된다. 그 예쁘고도 절실한 여유를 찾아, 긴 날들 힘든 언덕 넘고 넘어 이제 꽤 넓은 이 꽃밭까지 왔다. 그리고 그날의 그 배롱나무 꽃잎 한 조각, 이젠 뿌리 깊은 나무로 내 꽃밭 한 가운데서 평온하다.

그날 그 순간 그 꽃잎 한 조각은 정말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왜 그렇게 내 삶에 화석처럼 박혀버렸는지는 지금도 모를 일이지만, 꽃이 있어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고 앞으로도 행복할 것임은 분명하다’(예안 꽃마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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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환경신문 2022-05-21 06:02:44
꽃소리씨는 전직 교육자이자 귀농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