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옮겼던 벌터를 또 옮기게 되니, 문득 양봉도 유목(nomad)의 일종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양떼나 소떼를 모는 유목민은 풀(목초)을 찾아 이동한다. 진짜 유목에 가까운 이동양봉은 꽃(밀원)을 따라서 이동한다. 그런데 나는 벌터 자체의 임시성 때문에 이동한다. 도시 근교에도 양봉을 할 수 있는 자연녹지가 많지만 벌터는 항상 부동산 개발과 투기의 압력에 의해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년간 머물렀던 곳에도 신도시가 들어설 모양이다. 인구는 줄어든다는데 주택은 늘고 녹지는 점점 줄어드니 이상한 일이다. 다시 짐을 꾸리고 벌들을 옮기면서 진짜 유목민들의 삶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지팡이를 들고 양떼를 인도하던 유대인 현자들, 말을 타고 초원을 누비며 세계를 정복했던 몽골 용사들. 그들의 불안정한 생활, 임시성이 그들을 지혜롭고 강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그런 지혜도 용기도 다 좋다만, 이번에는 좀 더 오래 머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 임시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짐을 가볍게 하고 이사 비용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원래 임시거처인 농사용 비닐하우스도 옮기기가 너무 번거로워 이번에는 천막을 치기로 했다. 많은 쇠파이프가 들어가는 비닐하우스는 비교적 튼튼하지만 제대로 옮겨지으려면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형 천막을 쳐보니 이번엔 친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또한 약한 천막을 보강하기 위해 많은 손이 간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은 도움을 받아가며 터를 닦다보니 어느덧 늦여름이 가을로 바뀌었다. 8월말에 시작했는데 벌써 10월초. 이제 꽤 정리 되었지만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천천히 조금씩.
잦은 초가을 비에 벌들을 옮기는 일도 쉽지 않다. 날을 받아놓으면 비가 왔고 비가 오면 진입로가 진창이 되어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또한 벌들은 밤에 옮겨야 한다. 벌들도 사람처럼 낮에는 나가 일하고 밤이면 집에 돌아와 쉰다. 드디어 D데이. 일몰이 저녁 6시반이라고 예보되어 있었는데, 7시반이 되어도 벌들이 들어가지 않고 소문에 뭉쳐있다. 할 수 없이 연기를 뿜어 집어넣고, 좁은 길을 따라 손수레로 한통씩 날라 싣다보니 밤 11시가 넘었다. 새 벌터로 가서 안착시키고 집에 들어가니 자정을 넘었다. 트럭까지 빌려와 늦은 밤까지 도와준 선배와 친구에게 신세를 톡톡히 졌다. 다음날 소문을 여니 벌들이 밀려나온다. 낮에 햇볕이 드니 벌들이 함빡 나와 활발히 난다. 새 장소를 익히는 기억비행을 하는 것일까. 그들에게도 내게도 여기가 새로운 고향이다. “오늘은 이 산이 고향이다”라는 시를 쓴 이동양봉인 시인이 생각난다. 나는 몇 년에 한번 이사하지만 그들은 일년에도 몇 번씩 한다.
이사는 버림과 정리의 시간이기도 하다. 나에게도 필요 없는 물건들이 많이 쌓여 있다. 이번에 다 정리해야 한다. 그런데 이사를 하면서 정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리를 하기 위해서 이사를 했던 사람이 떠오른다. 일본 에도시대의 우키요에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이다. 유명한 파도 그림(‘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의 작가이다. 그는 집안을 어질러 놓고 그림을 그리다가 도저히 살 수 없게 되면 이사를 했다. 일생동안 93번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도 많이 버리지는 못했던 것 같다. 더 많이 버려야 공간이 생긴다.
새로운 터는 새로운 희망이기도 하다. 이번에 들에서 다시 산으로 들어왔다. 땅은 좁지만 둘러싸인 숲은 넓다. 옆에 흐르는 개울가에는 물봉선이 아직 많이 피어있다. 우물이 없어 개울물을 받아 쓰려 페트병으로 취수구를 만들어 호스에 연결해 두었더니, 그 안으로 가재가 들어와 있었다. 비교적 깨끗한 물인가 보다. 그런데 이 물도 임시이다. 갈수기엔 물이 거의 흐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 때는 또 다른 방법이 생길 것이다. 세계를 바꾸는 것은 항상 나의 작은 손이다. 노고 뒤에 평화가 있을 터.
수고 많으셨습니다^^
새록새록 희망이 솟아 오릅니다.